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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리를 '심리학적 접근'으로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
    명리 단상 2019. 1. 15. 01:52

    사실 명리학과 심리학을 동일 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서로 세계관과 인간관이 다른진데 어떻게 둘을 말할 수 있겠는가. 마치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서로 대치하는 것 처럼 말이다. 같은 인간을 다루지만, 관점에 따라 같은 인간이 아니다. 


    명리학은 철저히 동양학적 관점(동아시아 관점)을 심리학은 서양학적 관점(미국, 유럽의 과학적 관점)에서 그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명리학도 경험과 관찰에서 비롯된 자연과학적인 입장이며, 서양학도 실험, 실증 기반의 계량심리학의 전통이 아니라면, 고대부터 철학적 바탕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접근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명리학의 심리학적 접근에 대해 하나씩 그 방법과 이야기들을 해 나가겠지만, 무엇보다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심리학 용어를 차용하겠다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심리적 기능과 구성주의적 태도에 대해 바라보며, 일종의 관점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려는 기획에 가깝다.


    대자연의 일부로서 소우주, 소자연의 인간으로 상정했을 때의 문제는, 개인의 '지금-여기의 세계'에 대해 자칫 잘못하면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전체에 대한 부분의 희생이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은 각자 마음이 있고, 이 마음을 통해 각자의 세상(좋은 세상으로 보이든, 나쁜 세상으로 보이든)으로 의미를 구축하며 산다. 즉, 같은 명리학적 접근의 이론일지라도, 개인의 양상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정량적으로는 함축된 기호의 의미가 요긴하게 쓰일 수 있겠지만, 정성적으로 접근하기에는 기존의 명리학적 진단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명리는 '상담'이 아니라, '진단,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심리학적 접근은


    '외부'에서 '내부'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이 선언이 새 시대, 새 세대에 맞는 요긴한 전환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20190115

    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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