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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감정 고착’과 세대 편차 가설심리 단상 2019. 6. 9. 15:28
일요일에도 통합예술치료 임상실습을 위해 서쪽에서 동쪽으로 머나먼 여행중이다. 남들에겐 휴일이지만 사실 요일을 잊고 사는 나 같은 프리랜서에겐 사실 일요일이 크게 와닿진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시원한 전철에서 잠시 글을 쓰는 이 꿀맛같은 시간은 평생토록 지키고 싶다.
어제, 간만에 대학원 특강에 다녀왔다. 인지행동치료의 전문가이신 이성직 박사(용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의 특강이었다. 친히 한양대까지 오셔서 많은 걸 쏟고 가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on Behavior Therapy)는 심리치료의 핵심 조류 중 내가 가장 관심과 흥미가 적은 분야였다. 그러나 이제 그 순위가 바뀔 것 같다. 매우 흥미로운 통찰을 얻었기 때문이다.
앨버트 앨리스의 합리적정서행동치료REBT나 애론 벡의 인지행동치료에서 강조하는 것은 ‘비합리적 신념’, ‘역기능적 인지 도식’이다.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자동적 사고’, 즉 인지의 중요성을 체계화 한 대단한 인물들이다(덕분에 명리학을 인간의 인지 체계, 도식에 근거하여 관점의 전환을 하게 한 소중한 이론이다).
사실 상담 및 심리치료 이론은 서양(특히 미국)에서 건너온 이론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차지한다. 때문에 문화 관점에서 보면 서양인을 근간으로 한 이론이 동양, 특히 동아시아의 문화 풍토에서는 찰떡 같이 맞아 떨어지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인간 보편의 메커니즘 안에서는 분명 유의미한 적용이 될 것이지만 말이다.
때문에 본 특강에서 이박사님은 기존의 인지행동치료를 클래식하게 적용하였을 때(Classic-CBT) 한국인의 심리, 정서상 결과가 시원찮을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지, 즉 생각이나 사고만을 교정한다고 해서 증상이 쉬이 반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인 전반에 깔려있는 ‘애착 장애’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외침, 전쟁 등 외상(트라우마)을 많이 받고, 고도성장을 하면서 개인의 감정을 돌볼 일이 없거나 매우 서툴렀을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는 단순히 인지, 사고의 탐색 뿐 아니라, 신체에 각인되어 지배하고 있는 감정과 정서를 애도하고 풀어내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트라우마는 지리적 요인도 한 몫 할텐데, 몇 백년을 걸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긴장 상태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현대에 와서는 지역 갈등도 우리에겐 더 없는 외상으로 남을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생각으론, 한국 특유의 유교적 집단 문화, 가족 문화로 인해 개인의 고유한 자기 표현이 상당히 억압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 그리고 융의 분석심리학적 관점, 그리고 에릭 번의 교류 분석적 관점에서 보면, 조상대부터 면면히 쌓여 내려온 그런 집단무의식과 가족적인 각본은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한의 정서와 외상의 정서를 씻겨내지 못하고 가지고 온 요인이라 생각한다(물론 선행 연구를 찾아보지 않은 순전한 개인 의견이다).
이와같이 역사사회문화적으로 작금의 한국사람들은 자기 정서의 원활한 표출, 표현이 어려웠음은 자명하다. 이런 한국인들을 대대로 애착 손상이 자연스레 선행 되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유추 가능하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전후 세대 자손인 베이비부머 세대와 또 그 자식 세대인 속칭 88만원 세대는 누구보다 감정의 쌓임이 켜켜이 진행되었을 것이다(내가 그 전형적인 88만원 세대다).
그러면 베이비부머 세대 다음의 경제 호황기를 누린 X세대와 그 자식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90년생이 온다!!..)는 이런 정서 장애와 트라우마가 어느정도 작용을 할까? 조금은 다른 국면을 보이지 않겠냐는 게 나의 가설이다. 물론 한국인이라는 공통 분모는 가지고 있지만, 감정 고착이 베이비부머세대-88만원세대 조합 보다는 조금 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물론 이 역시 한국 안에서의 지역 편차와 소득 편차를 고려해야 하지만 말이다).
아 이제 어느 덧 내릴 시간이 다가왔다. 마침 청담역이다. 청담역의 사람들은 또 다른 심리적 아픔이 있을까? 내가 위에서 떠들어 댄 가설이 적용되지 않는 또 다른 나라 <스카이 캐슬>의 세계 일까?
자, 이제 그만 떠들고 임상하러 가자..
1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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