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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관점으로 보는 초기 기억과 경험심리 단상 2019. 3. 11. 02:00
명리 관점으로 보는 초기 기억과 경험
상담 및 심리학 공부를 하다보면 '초기 기억', '초기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정신분석학적 전통(정신역동적 접근)에서는 거의 5~6세 이전의 영유아기의 초기 양육 환경과 관련된 내용을 말하며, 청소년기까지의 경험까지 넓혀 상처받은 내면아이(Inner Child) 치유 대상에 포함한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구조 그림과 학령전기의 오이디푸스기 이론은 일반 사람들의 교양 대상으로 까지 알려질 만큼 유명하며,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에서 나오는 애착attachment 이론은 이제 보통 명사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사실 어린시절의 기억이 많이 나지 않기에 나의 어린 시절이 정말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데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는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어린 시절 억압된 소망과 에너지가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성인이 되어서 증상으로 발현된다고 하니, 지금 나의 다소 부적절한 습관이 있을 때마다 옛 시절의 아픔을 굳이 상기해보곤 한다.
그러나 상담 및 심리치료 이론들 중 게슈탈트 이론, 실존주의 이론, 인간중심 이론, 마음챙김 이론 등을 공부하다 보면, '지금 여기'를 강조하면서 유아동기로부터 비롯되는 결정론을 피해간다(물론 같은 정신역동적 입장이지만 프로이트의 심리성적 결정론에 반대하는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W. Adler의 목적론적 개인심리학의 입장이 있긴 하지만, 아들러도 결국 초기 기억과 경험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므로 논외로 하겠다). 게슈탈트적 접근은 과거 기억과 경험은 단지 내가 지금 여기 현재 구성해 낸 하나의 기억일 뿐이지, 과거 경험 그 자체의 순수한 사실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이론 역시 큰 맥락은 다르지 않다. 지금 여기 현재의 존재가 느끼고 경험하는 실재적인 세계와 감각이 중요한 것이고 나아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자유 의지와 창조성과 잠재력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핵심이다.
ⓒ flickr by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사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이론에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이 사실이다. 모르겠다, 그냥 직관이다. 사실 어느 이론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 나는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성, 자유 의지와 창조성을 믿는 편이다. 각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우라와 빛이 분명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고유의 기질과 특성이 잘 발현되었을 때, 그 어느 누구도 한 명 겹치지 않는 자기만의 결이 나오는데 그것이 매우 지지하는 편이다(나는 그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일단 위에 열거한 이론들은 모두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며 심리, 상담, 정신의학, 예술, 인문학 등 다양한 곳에 영향을 주고 있기에 각 이론의 신빙성과 신뢰도는 모두 인정해야 할 듯 하다. 그렇다면, 명리학은 위 이론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맥락으로 위 이론들과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개인 마다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기질과 성향, 즉 성격personality을 사주팔자라는 부호로 받아들여 선천적으로 주어진 명命을 그 시작점으로 한다. 엄마 뱃 속에서 잉태되어 세상에 처음으로 나와 응애 하며 울며 첫 숨을 들이킬 때 받아들이는 그 기운이 우주와 대자연으로 부터 부여받은 고유한 '생년월일시'라는 바코드가 몸에 새겨진다. 말 그대로 기운이 전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부여받은 기운은 기질과 성향을 결정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 특히 년월일시 중 년주年柱에 해당하는 부분이 초년기에 해당하는데, 사실 현대 명리학에서 자기 주체가 되는 영역은 일주日柱다. 이 일주를 기준으로 년주와의 관계를 보고 어린 시절이 어떠할 지를 대략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기본적인 팔자, 즉 명命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가 명命만 따지진 않는다. 우리는 운명運命destiny을 논한다. 즉 흘러가는 기운의 시간적 개념인 운運까지 함께 파악해야 제대로 된 분석이 가능하다.
이제 운까지 다 파악한 후라면, 어느정도 인생의 흐름과 윤곽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때 초기 기억과 경험 역시 어느정도 유추가 가능할진데, 이 초기 경험은 나중의 운명의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마치 이런 맥락과 유사하다. 초년운이 별로인 사람은 중·장년운의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그 나쁜 운의 영향에 따라 많은 영향(특히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 정신역동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어느정도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초년운이 조후적인 영향이든 무슨 영향이든 매우 안좋게 흐르게 되면, 부모와의 관계, 양육과 교육의 질이 달라질 수 있고,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시작점이 매우 불리해진다. 그럼 명리에서도 결국 초년운이 좋아야 좋은 사주라고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반대로 초년운이 너무 좋아버리면 후년운은 하락할 수 밖에 없다.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반영하는 역학의 원리 때문인데, 이 경우도 그닥 아름답다고 볼 수는 없지만, 초년운이 안 좋은 것보다는 좋다고 판단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대목이다(이래서 명리는 이현령비현령이 되는가보다).
개인적 의견은 이렇다.
일단, 명리적으로 초기 기억과 경험의 양상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명리 구조 전반의 질을 결정지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초년운이 나빠도 얼마든지 극복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대기만성형의 인물들이 있지 않은가. 이것도 역시 콤플렉스나 억압된 에너지가 긍정적으로 승화되어 생긴 소수의 현상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스가 있다는 것은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결국, 이 모든 것은 명리적으로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명리는 '기운'적으로 판단하는 학문이기에, 삶의 전반적인 모양을 결정할 수는 있지만, 생물학적인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원리를 따르긴 하지만, '식물', '미생물'이 아니라, '동물'이기 때문이다. 유전적 측면, 생리학적 측면, 신경학적 측면, 진화심리학적 측면 모두 고려해야 한다.
즉, 명리적인 접근 뿐 아니라, 환경적인 접근을 통해 내담자(고객)의 면모를 다양하게 파악해서 보다 입체적인 분석과 개입이 가능해지리라는 것! 그래 어디 이제부터라도 그리 접근해봅시다.
190311
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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