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 단상

새로운 패러다임 속 명리의 운명은?

진설 2019. 3. 1. 00:30

요즘 한창 명리의 역사에 대해 공부중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차피 명리도 인간이 고안해 낸 지혜의 결과물이라면,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고, 전파되고, 변화되어 왔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 이러한 흐름을 알면 현 시대에 명리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아직 공부를 많이 한 건 아니지만, 그 단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였다.


바로 중국에서 시작된 명리의 체계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갈 때 거국적으로 수용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부분이다. 


우선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바뀌어가는 격동적 과도기(13C말~14C말)에 원나라와 매우 활발한 문화적, 인적 교류가 있었고, 이 시기에 새로이 전파된 사주명리는 이미 사회적 모순을 개혁할 능력을 상실한 고려 왕조에 의해서는 새롭게 채택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였으며, 다양한 학문적 교양과 개혁사항을 지닌 조선 건국의 주체세력인 신흥사대부에 의해 관학으로 새로이 도입되고 활용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이유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당시 국제정세는 원, 명의 교체기로서 매우 급변하였으며,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왕조의 교체에 단순히 그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등 모든 면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를 이해하고 경영할 수 있는, 이에 걸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다. 따라서 사상 분야에서는 성리학이, 술수 분야에서는 명리학이 새로운 제도와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국교가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고, 고려조에서 채택한 과거 고시과목이 모두 새로운 과목으로 대체되고, 관상감의 소관업무로 지리, 점산이 새롭게 추가된 사실에서도 이런 경향을 알 수 있다.

 앞의 여러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조선 초에 이르러 부쩍 빈번하게 사주명리에 관한 내용들이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사주명리가 술수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하나로서,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당시 신흥 관료, 지식인들에 의해 원나라로부터 본격적으로 유입되었고 조선 건국 후 관학으로 정착하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김만태한국사주명리연구민속원, 2011, 126p)


그렇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수용되고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창조하려는 세력에게 명리는 그 당시 신흥학문으로 손색이 없을 터다. 


그렇다면, 현 시대의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는 인식 체계는 무엇일까? 현대는 포스트 모던적인 다양성의 세계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술문명을 위시한 과학적 세계관을 바탕이 중심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과학적 접근이 곧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표준이 되는 세계다. 측량화, 계량화, 수치화 된 정량적인 세계 속에서 사실 명리라는 학문이 단단하게 두 발을 땅에 딛고 세상 밖에서 버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주를 위시한 점복과 관련된 시장을 이용하며, 그 규묘는 몇 조원에 이르고 있고, 제도권 학문에서 진입하여 정식 학위과정도 생겼다. 제 아무리 과학기술의 합리성이 우리를 제화한들 우리 핏 속에 흐르는 집단무의식 까지 미치지는 못하나보다. 기술과 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들 인간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는 꺼질 수 없으므로, 기존 명리계에 있는 사람들은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굳이 더 과거로 갈 것도 없이 2010년을 전후로 등장한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세상이 열린 후, 우리의 행태는 너무나도 많이 변화했다. 불과 몇 년 사이의 혁신적인 변화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으며 불어온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아젠다는 이제 일상이 되었고, 이제 4G를 넘어 5G가 상용화 되면, 모든 정보와 기술이 실시간으로 집약되며 우리는 더 새로운 패러다임을 빠르게 맞이하게 될 것이다. 같은 21세기, 2000년대지만 과거의 100년, 10년이 이젠 1년, 그 이하의 개월 단위로 변화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모든 정보는 열려있고, 심지어 명리 지식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시대다. 더 이상 이전의 명리 지식과 관행이 쫀쫀한 재미를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명리는 어떠한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 명리도 고전 명리의 관점을 넘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야 할까? 아니면 그 정통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세상의 큰 변화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답일까?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 우리들은 어떠한 명리를 원하게 될까?


190301

삼일절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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