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단상

‘칼 융’과 ‘알코올’ 그리고 ‘신’

진설 2019. 2. 27. 00:30

오랜만에 자유 독서 시간을 만끽중이다.

독서대에 꽂혀있는 여러 책 중 멜린드 데이비스가 지은 <욕망의 진화 - 욕망, 물질에서 정신으로>라는 책이 유독 눈에 밟혀 꺼내 들었다. 브랜드 기획자 시절에 사회와 인간 사이의 욕망이 어떻게 역동하는지가 화두였던 시절이 있던 터라, 이 책은 그 치열한 고민(혹은 망상)의 흔적 쯤 되시겠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던 나의 영혼없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재밌게도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 자체의 내용은 아니어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본 책도 내용적인 면으로 보았을 땐 매우 훌륭함을 알린다), 요즘 한창 눈과 귀에 밟히는 칼 융 아저씨의(?)의 인용인지라 예민한 나의 촉수에 걸려든게 아닐까.



​​​“알코올에 대한 그의 갈구는 완전함을 향한 인간의 정신적 갈증, 낮은 단계의 그것과 같은 것이다. 중세적 언어로 표현하면 ‘신과의 합일’을 갈망하는 것 말이다. -융”


그래, 칼 융 아저씨가 이야기 한 것이니 정확한 출처는 모른다 해도 나에게 걸려들 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알코올’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왜 하필 알코올?

그도 그럴것이, 2월 4일 입춘 이후 제대로 된 기해년이 시작된 이후로 설날과 생일이라는 핑계로 술에 젖어(?) 살았다. 말 그대로 알코올에 취해 약 2주 정도를 피곤에 쩔어 지냈다.

(이쯤되면 알코올 중독으로 충분히 의심할 만 하다. 그러나 아직 사회적 기능을 온전히 하고 있기에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정신이상 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언제든 위험에 노출될 우려는 있다.)

어쨌든 지금은 아니지만 알코올, 즉 술을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온 몸 구석구석 지배하고 있을 때 저 글을 우연찮게 보게되니 융의 동시성 개념이 아니 떠오를 수 없다.

재밌는건, 내가 술을 먹는 행위에 대한 심리적 기제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완전함을 향한 정신적 갈증이자, 신과의 합일을 갈망하기에 알코올에 손을 대는 것이다? 어느 누가 이 말을 합당하게 수긍할까 싶지만, 나는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느낌적 느낌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이성을 마비시켜 무아지경에 들어서는 그 기분이 좋아서인데, 힘들게 명상을 하거나, 강도높은 운동을 하는 중이거나, 우연히 이동중 떠오를 때와 같이 매번 찾아오지 않는 상태이다. 그런데 술은 손 쉽고 값 싸게 그러한 상태를 가져다주니 나로서는 반가울 수 밖에.

글을 쓰고 보니 자기합리화가 될 것 같다. 그러나 내 속을 누가 아리...

어쨋든 술은 당분간 멀리하련다..


190227
진설